대한민국에서 학문의 길을 놓게 한 이유






오늘 YTN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외제차 리스비를 대신 내게 한 한 교수의 뉴스가 전파를 탔다.

간단하게 뉴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강원도의 모 국립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가 자신의 대학원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 자신의 외제차 구입비 (리스비) 를 대학원생들에게 내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이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마저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학위논문 심사비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동물 심장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교수이다."

(YTN 뉴스 보도 내용)


사실, 외제차 리스비 부분까지 듣기 전에는 "모 늘상 있는 일이려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쿠.


뭐? 외제차 리스비를 내게 했다고??


어느정도 이 블로그에서는 대략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일부 쓰여져 있는 부분에서 유추가 가능하지만, 나 역시도 우리나라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모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늘 가지고 있던 목표를 향해 달려보려 하였으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에 그 목표를 접었다.



사실, 나는 대학원생 시절 까지는 늘 뉴스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학생들을 착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도교수님,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파생 연구를 하려던 나에게 많은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학위과정 내내 그리고 학위를 취득하고 잠시 포스닥으로 있는 동안 나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나는 어디든 가서 내가 원하는 연구, 그리고 교수님이 원하는 연구를 위해 공동 연구도 할 수 있었고,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다른 연구실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익히 보고 겪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대충 한 두 다리만 건너 뛰어 보면, 인건비 문제는 고사하고, 연구 논문을 조작한다던지, 또는 대학원생들에게 조작을 강요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지도교수나 또는 해당 연구실의 포스닥이나 강사급 인물들이 적절한 지식이 부족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


물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 우러러보는 미국 (사실 정확하게는 교수를 채용하는 대학의 임원분들이 더 좋아하지만....) 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의 학교에서는 종종 생기는 일들이기도 하긴 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밝혀지면 매우 큰 사건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대학원생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위를 받고, 앞으로도 탐구해 보고 싶은 분야들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다음의 진로를 고민했다.


다른 나의 외부적인 사정은 제외한 채, 연구에 관한 부분만을 서술해 본다면, 나는 이러한 이유로 어떻게 커리어 패스 (진로) 를 그릴 것인지 계획했고,

여러 사정 상 미국으로 가려던 것이 조금 변수가 생기게 되어 우리나라 안에서 커리어 패스를 그리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지난 보수 정권 기간 동안 RND 분야의 예산이 엄청나게 깎인 데다가, 설상 가상으로 특정 팀에게 밀어주기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어 연구 환경이 열악한 것 외에도 연구 범위가 매우 좁다는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적절한 연구실을 찾는 데에도 매우 힘이 들었었는데, 기왕 한국인으로 태어난 거, 이 나라 안에서 한번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에 찾고 찾아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사실, 몸을 옮긴 곳은 당연히 내가 졸업한 학교도 매우 좋은 학교이지만, 유난히 연구에 몰빵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최대한 미국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대부분 나보다 조금 위인 선배들이 초임 교수들의 자리들을 다 차지하고 있고, 그중의 대부분은 다들 미국 물을 먹은 사람들이니, 뭐랄까.


내가 생각했던 어떠한 이상적인 것에 근접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모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새로운 현실에 몸을 담고 난 뒤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 패치"


이 단어는 인터넷 상에서 해외의 질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문화가 좋은 업체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한국에서는 우리나라 문화를 그대로 답습, 적용하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하락된다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분명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미국에서 오랜 시간들을 보내고 온 사람들이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 경험이 많은지라, 그러한 모습들이 어색할 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만난 현실은 "거짓말, 무조건적인 야근, 휴일은 없는 월화수목금금금"



물론, 가끔은 나도 다른 연구실의 학생들이나 또는 다른 나이 어린 학생들을 보며 이런 일종의 "꼰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쟤네들 저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겠다는 거지?" 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그러나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나 그런 생각을 하지,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을 최대한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는 오히려 "쉬엄 쉬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그 모습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체력을 넘어설까 걱정되는 경우도 있기에, 그들의 꿈이 더 "굵고" 더 "길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더욱 쉬엄 쉬엄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겪은 유난히 특이한 상황을 일반적인 것으로 전제해 버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역시도 비일비재한 경우가 있어 더더욱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아니, 과학의 논리로 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를 저질러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게다가, 윗사람들이 만들어 버린 이 잘못된 문화를 젊은 사람들이 변화시키지 못 하고 그대로 이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다 보니, 부당한 문화가 그대로 전달되는 안타까운 일도 비일비재한다. 아니, 윗사람들이 순수하게 "학문" 을 할 사람들을 가지고 "시장 논리의 경쟁" 을 시키려 하는데,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다 보니, 그 경쟁 사회에 그대로 젖어 들어 버려 자신의 것들만을 챙기기에 급급해져 버리고 말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서로가 반목하고 싸우기도 한다. 서로 다른 학문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느끼기도 한다.

물론 나 역시도 나의 연구 결과, 나의 연구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구 분야를 일부러 까 내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정말 "실현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나왔다. 늘 농담처럼 "순수한 학문과 연구를 밥벌이로 하면 안돼" 라고 이야기하며 웃고 넘어갔던 그것.


그러게... 이 나라에서는 그게 밥벌이가 되니까 온갖 보기 싫은 모습들이 판치는 모습밖에 볼 수 없다는게 매우 씁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늘 뉴스 전파를 탄 그 교수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자.


취직 좀 해 보자고, 또는 공부 좀 해보자고 대학원의 길. 학위의 길을 선택한 친구들에게 학문의 길, 그리고 학자의 길에 대한 희망을 좀 더 심어줄 순 없었던 걸까? 내가 지금도 존경해 마지 않는 나의 지도교수님과 같은 그런 모습들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인가?


그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학원생들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물론, 대학원의 질이라던가, 학생들의 능력 이런 부분들. 이런 부분들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논지에서 벗어난다. 일단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아마, 오늘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연구실에서는 이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대체 언제쯤이나 되어야 고쳐질 것인가? 언제쯤이나 되어야 정말 말 그대로의 "선진화" 가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이 소년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 이 친구가 무엇을 하는 친구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친구를 이렇게 부릅니다.

"천재소년 송유근"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이 친구는 정말 천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만약, 이 친구가 천재가 아니라면?

단순히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마치 어린 아이가 놀이하듯이 재미있게 열심히 파고들고 있는 것일 뿐이라면?

여러분은 유근이를 누구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뉴스 기사에서 유근이에 관한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어느새 석박통합 과정 변경에 지원하여 석박통합으로 과정 변경 승인을 받았다고 하네요.

석박 통합 과정은, 기존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이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과정에 다시 재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을 단축하여 한번에 이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석사 2년, 박사 3년에서 5년 정도의 과정을 약 3년에서 5년 사이에 한번에 마칠 수 있는 과정입니다. 때문에 학사 - 석사- 박사 의 순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학사 학위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유근이가 바로 이 통합 과정에 지원해서 과정 변경 시험을 합격하고 과정 변경 승인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근이는 곧 박사 학위를 소지한 말 그대로 '박사님' 이 되겠지요.

그런 유근이가 어느 새 13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만 나이로 이야기하니까, 우리식대로 하면 이제 14살이 된 건가요? 어쨌거나, 우리의 기억에는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 입학 준비를 하던 꼬맹이 유근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이 친구가 어느 새 사춘기의 나이가 되었답니다.

이제 곧 이 친구도 본인이 하고 있는 학업 외에 자신의 나이에 맞게 정서적으로 성숙해 가는 시기도 겪을 것이고, 또 남들처럼 사춘기 시기도 겪게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세상에 반항하는 시기도 오겠지요. 또한,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학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시기가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유근이에게 성인이 된다라는 부담감과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 삶 이라는 것의 무게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나이이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열심히 할 수 있었겠지만, 어쩌면 이 친구에게도 잠깐 방황의 시기가 오게 될 지도 모르지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뉴스 기사는 유근이의 석박통합 승인 소식을 전하면서 제목으로 이렇게 달고 있습니다.

"천재소년 송유근 최단기 박사과정 도전"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네 말은 맞습니다. 처음에도 밝혔듯, 석박 통합 과정은 박사학위를 짧은 시간 안에 취득할 수 있는 과정임에는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게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사는 유근이의 박사과정 진학을 다루면서 유근이의 박사과정 진학을 주 내용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최대 3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최단기 박사 과정' 에 '도전' 하고 있다 라고 주 내용을 잡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황우석 박사 사건을 기억하시죠? 동물 복제에 관해서는 세계 그 어느 유명 석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고 훌륭했던 그가 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인간의 질병 치료에 뛰어들어 마치 곧 우리가 기대하던 그것을 손에 넣을 것만 같았는데, 열어보니 모두를 실망시키고 말았던 사건 말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의 잘못된 행동은 분명 연구자로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우리는 한번쯤 그가 왜 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그가 가져야 할 연구자의 기본을 거르스는 행동을 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유근이가 잘못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근이에 대한 세상의 기대 이상의 엇나간 분에 넘치는 관심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쪽 분야에서 공부해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사실, 과학 분야의 연구라는 것이 돈이 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가 원래 돈이 들어간 만큼 성과가 그대로 잘 나와 주는 분야가 되질 못합니다. 100의 돈을 들여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을 통해 200의 임대 수익을 내는 경제 활동과는 분명히, 그리고 아주 완전히 다른 분야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는 들어간 수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 기대되는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고, 과학이 어느 한 분야만의 발전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고르게 혜택을 받지 못 하게 되는 안타까운 면이 있지요. 때문에 어느 분야의 누군가는 넘쳐나는 연구비에 기쁜 환성을 지르며 넉넉하게 연구를 하고 있고, 또 다른 어느 분야의 누군가는 없는 연구비를 열심히 긁어 모으고, 실험 비용을 아끼고, 기자재를 아끼고, 재활용을 해 가며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황우석 박사는 이 부분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겠지요. 자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갑작스레 세상이 너무 큰 관심을 주고 있고, 엄청난 기대와 투자는 반대로 그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의학에 몸을 담고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는 가능성은 있으나 1년 2년 만의 초단기 연구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의 성질이 아닙니다. 물론, 모든 기초 연구, 실험 연구 등의 모든 연구들이 몇달, 몇년의 연구로 성과를 보이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성과' 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엄청난 공을 들여 무척 자랑스러운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랄만한 이 성과에 달려들어 열화와 같은 관심을 보이고 다음 연구 서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마치 그들의 공이 어디에서 뚝 떨어진 것 처럼...

네 그렇습니다. 연구라는 녀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경제재들이 작용하려면 이러한 경제재를 단순히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한 만큼의 무언가, 즉 이윤이 발생해야만 이러한 경제재들을 하나의 연구에 투자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제 친구 중의 한 친구가 이야기했듯,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작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예산 자체가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돈 되는 곳' 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나라는, 과학이라는 분야 그 자체에 투자를 하고 있나요. 아니면 돈이 되는 '사람' 에게 투자를 하고 있나요?

분명 교육과 기술 개발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경제활동처럼 투자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경제활동에 비해 본다면 말이죠.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교육과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요. 

아주 비약적인 예를 들어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투자하는 교육비를 계산한다 치면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총 12년간의 투자의 성과는 바로 '대학 입학' 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낼 수 있는 어떠한 성과가 가시화되는 데에도 12년이 걸리는데 그 이상은 어떻겠습니까?

유근이는 다르다고요? 유근이는 '천재' 라서?

그렇다면 우리가 천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유근이처럼 어릴 때부터 기초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흥미와 재미를 유도해 낼 수 있는 그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어 주면 되죠. 그리고 그것이 투자가 될 것이고요.

모든 사람들에게 다 똑 같은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을 방관해 두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확률이 빛을 발했다 해서 빛을 발한 그 확률에 집중 투자를 하는 것 보다는 모두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 2의 송유근이 나오고 제 3의 송유근이 나오고, 어른 송유근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비용은 어떻게 대야 할까요? 예산 1만원이 있고, 10명의 어린이가 있을 때, 그 중 뛰어난 성과를 보인 한 명에게 1만원을 몰아 줘야 할까요, 아니면 10명의 어린이를 1만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할까요?

정답은 10명의 어린이에게 10만원의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늘린다.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국민들, 그리고 학문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에 조금만 자르고, 조금만 절감하고, 조금만 아껴서 학문 분야에 더 투자해 준다면 조금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 하고 엉뚱하게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매년마다 지방 재정 지원비가 삭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금을 몰아 쓰려고 보도 블럭을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라도 줄여서 교육에 더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부는 싫건 좋건 시장 경제 하에서 어느정도 경제 상황을 이끌거나 또는 이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정부는 세금을 이용합니다. 만약 경기가 위축되어 있다면 정부는 모인 세금을 국가에 풀어 소비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 흐름이 발생하도록 돕지요.

따라서 지자체들이 매년 연말마다 세금 사용을 위해 보도블럭을 갈아치우는 행위도 어떤 상황에서 관점을 달리 놓고 보면,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인부들의 임금, 교체를 담당하는 업체의 소득, 보도블럭을 제조하는 관련 산업들의 소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돕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 연구 개발 분야도 그렇습니다. 투자를 함으로써 관련 분야 종사자들과 이의 혜택을 받는 이들에게 학문적인 개발이 주어짐과 동시에 이에 대한 관련된 교재, 실험 및 연구 관련 기자재, 이들의 생산 업체 등, 많은 분야로 유입된 돈이 흘러 나가 돈의 흐름을 돕습니다.

또한, 이 교육 연구 개발 분야의 관련 산업들은 흔히들 말하는 '고부가가치 산업' 의 일종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빨리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못한다 뿐이지 많은 효율을 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만 지우친 돈의 사용 보다는 넓은 분야로 자금을 풀어 다양한 방향으로 세금이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겠지요.

이렇게 연구 개발이라는 녀석이 돈을 필요로 하는 녀석이다 보니, 아마도 황우석박사는 성과를 내지 못 하면 자신에게로 향한 기대. 즉 그를 향한 투자의 발길이 금방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가 과학자라는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연구 윤리도 중요하지만, 그가 일평생 그가 이루고 싶은 것,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이 되어야 할 다른 부가적 요소들이 그를 조금이라도 방해하고 있었겠지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유근이도 이제 13살이라고 합니다. 유근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곧 유근이에게도 성인을 준비해야 할 두 번째 시기인 2차 성징이 오는 제 2의 성장기가 다가오게 될 것이고, 또 앞으로 그가 지금껏 열 세 해를 살아온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겪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 친구가 부럽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일찍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고, 또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 그의 인생을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관심은 이런 유근이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이 친구가 언제 박사를 따고, 언제 어떤 성과를 내서 우리나라에 어떤 이득을 안겨 줄 수 있겠는가가 중요하지, 정작 이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주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이 친구가 박사 과정을 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또는 좋은 성과를 금방 내지 못 한다 하더라도, 또는 이 친구가 다른 분야에 마음이 생겨 다른 분야에 손을 대거나, 또는 그 분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꾼다 하더라도, 또 잠시 슬럼프에 빠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유근이의 그 모습 그 자체를 보고 응원해 줘야지 그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송유근이라는 단지 공부가 미칠 듯이 좋은 한 사람을 스타로 만들기보다 다른, 그리고 또 다른 유근이처럼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치고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투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누군가 한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에서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혜택을 통해 부담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펼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제 유근이도 13살이라고 합니다. 어느 순간 이런 우리의 시선이 이 친구에게 부담으로 다가설지도 모릅니다. 유근이 같은 인재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 주시고, 유근이는 자신의 공부를 부담없이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조금 관심을 돌렸으면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