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학문의 길을 놓게 한 이유






오늘 YTN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외제차 리스비를 대신 내게 한 한 교수의 뉴스가 전파를 탔다.

간단하게 뉴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강원도의 모 국립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가 자신의 대학원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 자신의 외제차 구입비 (리스비) 를 대학원생들에게 내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이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마저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학위논문 심사비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동물 심장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교수이다."

(YTN 뉴스 보도 내용)


사실, 외제차 리스비 부분까지 듣기 전에는 "모 늘상 있는 일이려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쿠.


뭐? 외제차 리스비를 내게 했다고??


어느정도 이 블로그에서는 대략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일부 쓰여져 있는 부분에서 유추가 가능하지만, 나 역시도 우리나라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모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늘 가지고 있던 목표를 향해 달려보려 하였으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에 그 목표를 접었다.



사실, 나는 대학원생 시절 까지는 늘 뉴스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학생들을 착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도교수님,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파생 연구를 하려던 나에게 많은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학위과정 내내 그리고 학위를 취득하고 잠시 포스닥으로 있는 동안 나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나는 어디든 가서 내가 원하는 연구, 그리고 교수님이 원하는 연구를 위해 공동 연구도 할 수 있었고,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다른 연구실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익히 보고 겪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대충 한 두 다리만 건너 뛰어 보면, 인건비 문제는 고사하고, 연구 논문을 조작한다던지, 또는 대학원생들에게 조작을 강요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지도교수나 또는 해당 연구실의 포스닥이나 강사급 인물들이 적절한 지식이 부족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


물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 우러러보는 미국 (사실 정확하게는 교수를 채용하는 대학의 임원분들이 더 좋아하지만....) 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의 학교에서는 종종 생기는 일들이기도 하긴 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밝혀지면 매우 큰 사건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대학원생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위를 받고, 앞으로도 탐구해 보고 싶은 분야들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다음의 진로를 고민했다.


다른 나의 외부적인 사정은 제외한 채, 연구에 관한 부분만을 서술해 본다면, 나는 이러한 이유로 어떻게 커리어 패스 (진로) 를 그릴 것인지 계획했고,

여러 사정 상 미국으로 가려던 것이 조금 변수가 생기게 되어 우리나라 안에서 커리어 패스를 그리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지난 보수 정권 기간 동안 RND 분야의 예산이 엄청나게 깎인 데다가, 설상 가상으로 특정 팀에게 밀어주기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어 연구 환경이 열악한 것 외에도 연구 범위가 매우 좁다는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적절한 연구실을 찾는 데에도 매우 힘이 들었었는데, 기왕 한국인으로 태어난 거, 이 나라 안에서 한번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에 찾고 찾아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사실, 몸을 옮긴 곳은 당연히 내가 졸업한 학교도 매우 좋은 학교이지만, 유난히 연구에 몰빵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최대한 미국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대부분 나보다 조금 위인 선배들이 초임 교수들의 자리들을 다 차지하고 있고, 그중의 대부분은 다들 미국 물을 먹은 사람들이니, 뭐랄까.


내가 생각했던 어떠한 이상적인 것에 근접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모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새로운 현실에 몸을 담고 난 뒤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 패치"


이 단어는 인터넷 상에서 해외의 질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문화가 좋은 업체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한국에서는 우리나라 문화를 그대로 답습, 적용하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하락된다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분명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미국에서 오랜 시간들을 보내고 온 사람들이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 경험이 많은지라, 그러한 모습들이 어색할 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만난 현실은 "거짓말, 무조건적인 야근, 휴일은 없는 월화수목금금금"



물론, 가끔은 나도 다른 연구실의 학생들이나 또는 다른 나이 어린 학생들을 보며 이런 일종의 "꼰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쟤네들 저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겠다는 거지?" 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그러나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나 그런 생각을 하지,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을 최대한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는 오히려 "쉬엄 쉬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그 모습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체력을 넘어설까 걱정되는 경우도 있기에, 그들의 꿈이 더 "굵고" 더 "길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더욱 쉬엄 쉬엄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겪은 유난히 특이한 상황을 일반적인 것으로 전제해 버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역시도 비일비재한 경우가 있어 더더욱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아니, 과학의 논리로 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를 저질러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게다가, 윗사람들이 만들어 버린 이 잘못된 문화를 젊은 사람들이 변화시키지 못 하고 그대로 이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다 보니, 부당한 문화가 그대로 전달되는 안타까운 일도 비일비재한다. 아니, 윗사람들이 순수하게 "학문" 을 할 사람들을 가지고 "시장 논리의 경쟁" 을 시키려 하는데,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다 보니, 그 경쟁 사회에 그대로 젖어 들어 버려 자신의 것들만을 챙기기에 급급해져 버리고 말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서로가 반목하고 싸우기도 한다. 서로 다른 학문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느끼기도 한다.

물론 나 역시도 나의 연구 결과, 나의 연구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구 분야를 일부러 까 내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정말 "실현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나왔다. 늘 농담처럼 "순수한 학문과 연구를 밥벌이로 하면 안돼" 라고 이야기하며 웃고 넘어갔던 그것.


그러게... 이 나라에서는 그게 밥벌이가 되니까 온갖 보기 싫은 모습들이 판치는 모습밖에 볼 수 없다는게 매우 씁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늘 뉴스 전파를 탄 그 교수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자.


취직 좀 해 보자고, 또는 공부 좀 해보자고 대학원의 길. 학위의 길을 선택한 친구들에게 학문의 길, 그리고 학자의 길에 대한 희망을 좀 더 심어줄 순 없었던 걸까? 내가 지금도 존경해 마지 않는 나의 지도교수님과 같은 그런 모습들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인가?


그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학원생들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물론, 대학원의 질이라던가, 학생들의 능력 이런 부분들. 이런 부분들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논지에서 벗어난다. 일단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아마, 오늘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연구실에서는 이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대체 언제쯤이나 되어야 고쳐질 것인가? 언제쯤이나 되어야 정말 말 그대로의 "선진화" 가 이루어질 것인가?



그냥 액션 영화를 만들던가

아니면 사실에 좀 치중하라고







개봉 전부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루었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모았던 영화 군함도.

그러나 개봉 이후 역사 인식에 대한 엄청난 논란을 낳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영화의 인기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인기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개봉으로 인해 완전히 사그라 들어 버리고 말았다.


군함도의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국뽕 영화를 만드는 것인가?" 라던가 "과연 천만을 넘길 것인가" 라는 둥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표했었는데, 적장 그 뚜껑을 "개봉" 해 보니, 기대는 커녕 우려도 이런 우려가 없겠다.


영화 택시운전사 (좌) 와 군함도 (우) 사진은 구글 검색을 통해 입수


내용이 좀 길어질까 싶어. 미리 결론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볼까 한다.

이 포스팅을 쓰고 있는 나도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모두를 봤는데, 택시운전사의 영화 만족도는 최고인 반면, 

군함도는 "그나마 최대한으로 할인을 받아 싸게 봐서 다행이다" 라는 평가를 남기고 싶다.


왜 이렇게까지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게 되었는 지 이제 하나씩 풀어가 보자.



1. 군함도와 무한도전


군함도의 이야기를 먼저 끌어나가 보자.


사실 우리는 그 비중이 조금 낮았을 뿐, 군함도에 대해 다들 알고 있었다. 


군함도, 일본 명으로 하시마 섬은 일제 강점기 시기부터 일본의 70년대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곳으로 석탄 매장량이 매우 많아 일찌기 탄광이 개발된 곳이다. 서두에 일제 강점기를 언급했다시피. "당연히" 일제 강점기 시기에 우리나라의 많은 조상들이 강제로 이 곳에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이 군함도를 근대화의 "산물" 이라며 유네스코에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할 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크게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곳곳에서 이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군함도는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록되고 말았고, 유네스코에서는 일본 측에 "일제 강점기 시기의 강제 노동에 대하여서도 명시할 것" 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일본은 지금도 그것을 대차게 "쌩까고" 있다.


그러던 와중, 무한도전에서 세계 각지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고향의 음식을 전달한다는 취지로 "배달의 무도" 특집을 제작하였고, 이 때 일본 내 "우토로 마을" 에 거주하고 계시는 동포들을 위한 음식을 배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의 제안에 응해 우토로 마을이 일본 편으로 제작되게 되었다.


사실 이 우토로 마을은 당시 일본군의 공항이 지어졌던 곳으로, 이 곳에서도 강제 노동이 있었고, 일본의 패전 후 군함도에 남아 있었던 우리 조상들을 우리나라로 보내지 않고 그대로 우토로 마을로 옮겨 방치해 버린 곳이다.


무한도전 군함도 특집 캡쳐 화면 중 일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입수


"급여" 라는 게 있는 척은 했는데, 다양한 명목으로 다 뜯어가고 (영화 군함도에서는 이 부분을 잘 표현하긴 했다.. 초반이란게 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조차 찾을 수 없었던 강제 징용의 희생자들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대로 이 우토로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버려진 땅, 버려진 존재나 다름없어, 이 마을은 지금까지도 하수도 시설이 없기로 유명하고, 심지어 70-80년대에 미츠비시가 해당 땅의 주인이라며 우토로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으려 한 적도 있다. (실제 미츠비시의 소유이기도 했고, 패전 이후 미츠비시가 일부러 그 당시까지 그냥 살게 둔 것이다고도 한다)



당시 우리나라 내의 시민 단체들이 이를 알고 모금을 통해 미츠비시와 협상을 진행하였고, 이 이후에서야 간신히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과 그 후손들이 이 우토로 마을에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무한도전에서는 군함도 특집 편까지 동시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군함도를 찾아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고, 그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어 묻힌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신당을 간신히 찾아 눈물을 흘리고 돌아온다.


현재 한국 내에 생존해 계신 군함도 강제 노역의 희생자 할아버지 두 분. 그 중 한 분은 실명 상태이시라고.


무한도전의 팬이라면 위 사진 속의 할아버지 두 분을 기억할 것이다. 우토로 마을의 할머니도 기억에 잊혀지지 않지만, 위의 할아버지 두 분은 더더욱 그렇다. 분노와 눈물 이 모든 것을 느끼고 흘리게 만든다. 아래의 할아버지는 석탄 가루가 묻은 손으로 눈 주변의 땀을 닦느라 눈까지 안 보이게 된 분이다. 두 분 모두 "쌀밥" 이 그렇게 그리우셨다고 한다.



2. 영화 군함도


이제 영화 군함도로 들어가 보자.



처음 이 영화의 시시회가 열린 후, 이 영화의 시사회 평점을 보았을 때, 내심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당시 전문가 시사회 평점은 매우 낮았고 보통은 이런 일종의 "국뽕"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의 상당수는 전문가의 평가와 관객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되었고,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를 열어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좋았다 라거나,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라거나 슬펐다 라는 무언가 당연히 느껴질 것 같은 반응들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역사 인식의 왜곡" 까지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이 포스팅을 쓰는 나도 군함도를 보게 되었고, 보는 내내 착잡했다. 아니. 영화의 시작부터 기분이 착잡하다 못해 짜증이 치솟았다.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의 전반에 흘러 나오는 배경 음악은 너무나 활기찼다. 가장 처음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어 나가는 사람들을 축하 (일본의 관점에서 축하) 하는 장면에서의 웃음 포인트나 활기찬 배경 음악은 둘째 치더라도, 군함도에 도착한 이후까지의 배경 음악마저도 잠시 눈을 감으면 "일본에서 만든 영화인가" 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강제 징용을 당한 노동자들의 삶이 의외로 너무 자유로웠다. 무한도전에 출연해 증언했던 할아버지는 죽어라 일해도 채우기 힘든 정도의 고된 작업량을 강요받았다고 하고, 간신히 그렇게 작업량을 채우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어 가 보면 옥수수 껍데기로 만든 죽 뿐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서로 작업반장 자리를 놓고 싸우고, 여기에 중재하는 조선인까지 등장한다. 저녁에는 서로 모여 도박을 하며 시간을 때우거나, 그림을 그려 일본군에게 팔아 담배를 받아 오기도 한다.


심지어 윤락가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섞여 있기도 하고, 조선인마저 그 윤락가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려진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쳤다. 밝혀지지 않은 고증 내용도 있을 것이고, 영화이기 때문에 일부 영화적 스토리를 위한 상상도 가미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외부에서 내부의 주요 인물을 빼내기 위해 특수 임무를 띈 군인이 잠입한다. 마치 프리즌 브레이크의 장면처럼....

그리고 영화는 점점 탈출 영화로 변모해 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 탈출이 "실패" 한다면 역사적인 내용 틀 안에 딱 맞는 영화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탈출이 성공한다. 심지어 영화는 거의 블록버스터를 방불케 할 만큼 탈출하고자 하는 강제 징용 노동자 측과 막으려는 일본인들 간의 전쟁에 가까운 치열한 싸움이 부각된다.


아니, 거기까지도 좋았다. 차라리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실제 탈출은 역사적으로 없었다. 강제 노동 희생자들은 계속 노동을 강요받다가 일본 패전 후 일본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본 영화에서는 그들의 아픔을 탈출 이라는 상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라는 식의 자막으로 마무리만 했더라도. 그랬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끝이었다.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리고 남은 의문.... 소지섭 씨와 이정현 씨는 왜 나온 거지? 강제 징용 스토리를 다룬 영화에서 또 사랑, 신파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인가?


아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실제 우리 강제 노동 희생자인 우리 조상들이 "탈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라는 의문이었다.


차라리 이 모든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도 탈출이 성공하지 못 한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있지도 않은 탈출이었고, 탈출에 성공한 안타까운 희생자들도 없었으니까. 그게 역사적인 사실이니까 말이다.



3. 푸른 눈의 목격자, 그리고 택시운전사


군함도에 이어 개봉한 택시운전사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군함도와 닮았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중 항쟁의 당시를 담은 영화이며, 그 참상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처음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광주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에 이상함을 느끼고 광주로 잠입했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무사히 탈출하여 독일로 보낸 필름이 뉴스를 통해 공개되는 장면


군함도처럼 역시나 우리도 위르겐 힌츠페터 씨를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푸른 눈의 목격자" 로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그가 왜곡되어 잊혀져 묻힐 뻔 했던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을 알고 있다.


가장 처음 위르겐 힌츠페터 씨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비뚤어진 근현대 역사들을 알리는 방송들에 의해서였다. 제목마저도 "푸른 눈의 목격자" 이다.



따라서 실제 사건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군함도와 매우 닮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기 전 약간 개인적으로는 우려 아닌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군함도 처럼 단순 국뽕 영화이면 어떻게 하지... 라는 우려를 안고 말이다.



이 영화에도 물론 아쉬움이 묻어 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적어도 영화를 보던 중에는 말이다.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는 통역사를 대동하고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는데, 영화 내에서 통역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우디" 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택시 운전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던 중 "이게 뭐야!" 라며 속으로 탄식했던 장면은 후반부, 광주를 탈출할 때 검문소에서 군인에게 트렁크 내의 서울 택시 번호판을 걸렸을 때 였다.


실제 역사는 힌츠페터가 광주를 탈출해서 성공적으로 촬영 필름을 독일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 장면을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이런 "설정" 을 넣었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호판을 발견한 군인이 그냥 보내라고 한다. 어? 이상하다. 이렇게 간단하게 풀어버리려는 것이었어?


그렇게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잘 따라 흘러 가고 이제는 고인이 되어 볼 수 없게 된 힌츠페터씨의 인터뷰를 보며 끝난다.


엄청난 충격을 안기며 끝난다. "뭐야? 택시운전사가 남긴 연락처의 이름이 진짜 김사복이었어?" 라며 말이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지난 역사를 상기하고자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또 놀랐다.


뭐야? 서울 택시 번호판을 진짜 걸렸는데, 그걸 발견한 군인이 그냥 보내줬어?!!!


라며 말이다.


그리고 감탄했다. 이런 한국에서 이런 영화는 최근에 정말 보기 힘들었다고 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내에서도 여러가지 허구적인 부분들이 등장한다. 택시운전기사의 삶이라던가, 또는 광주에서 등장한 류준열이 연기한 인물 같은 일종의 "설정" 부분 말이다.


그러나 이 몇 가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사실이다. 실제 택시들이 부상자들을 날랐던 것도 사실이고, 군인들에 의한 총격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영화는 위르겐 힌츠페터가 목격하지 못 한 부분은 표현하지 않았다. 단순히 택시 기사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에서 그 때의 정황들이 들려 올 뿐이다.

"어제는 애국가가 나와서 서 있었는데 그대로 총을 쐈다잖아" 라는 식의 대사 말이다.


또, 한국을 떠나기 전 필름을 숨기기 위해 필름이 담긴 박스에 당시 신라호텔에서 파는 과자들을 담아 위장하여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것 역시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마치 영화적 장치가 등장했던 것과 같은 긴장감이 남는다. 눈물과 웃음, 분노와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향한 감사도 느껴진다.


실제 당시 5.18 민중항쟁 중 시민 쪽에서도 강경파가 있어 무장하고 군인들과 총격전을 하기도 했는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왜 다루지 않았을까?



4. 체력이 떨어져 가서 이제 마무리로


영화는 영화다. 문학 작품과 같이 작자의 상상이 가미될 수 있고, 작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법" 에 따라 동일한 내용이 다양하게 비춰지거나 서술될 수 있다.

그야말로 문학 작품과도 같은 예술의 하나로서 얼마든지 다양한 상상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자유" 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제가. 그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화법" 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함도는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로 내세웠는데 왜 혹평을 받고 기대작품에서 관객의 외면을 받는 작품이 되었을까?

택시운전사 역시도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로 내세웠는데 왜 곧 천만을 넘길 것이라는 기대 섞인 눈길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을까?


바로 표현의 방법과 그 범위. "화법" 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뼈대 자체를 사실 그 자체에 맞추어 놓고 나머지 영화적 상상력을 그 뼈대에 덧붙였다.

군함도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먼저 그리고, 그 영화의 겉옷에 "역사" 를 입힌 후 이름표에 "군함도" 라고 써서 겉옷에 달아놓은 격이다. 감독은 자신이 군함도를 역사적인 사실 내에서 표현하면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성토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정작 그렇게 느끼고 있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아예 완전히 생각을 좀 달리 해서 무한도전에서 군함도 특집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아마도 영화 군함도 역시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다며 기대섞인 눈길로 바라보는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미 그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이 안타까운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그 슬픈 역사를 알기에 영화의 스토리가 대충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픈 역사를 표현해 낸 감독과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같이 서로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아픈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우리의 앞선 이들에게 감사와 애도를 표현하려는 것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영화 군함도의 화법이 "잘못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의 많은 역사들을 다루는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사실을 왜곡하거나, 전체 맥락을 흔들 수 있는 상상의 가미는 피했으면 한다. 마치 작년에 개봉했던 "덕혜옹주" 처럼 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