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이 문을 열고 닫는다니.... 이건 어느 나라 이야기?

어디 기술 수준이 낙후한 개발 도상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 운행하는 지하철일까?

그러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월요일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나라의 수도권에서 운행하는 전동열차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짜 "사실" 이자 "현실" 이다.

얼핏 영화 쯤에서나 볼법한 이 상황은 비단 한두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상 구간을 운행하는 전동차라면 거의 모든 차량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사건' 수준의 것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우리는 정말 놀라운 것을 경험했다. 정말 놀랍다 못해 엄청 큰 것이었다. 104년 만의 폭설이었다던가...? 서울 지역에 무려 25cm가 넘는 눈이 내렸고, 실제 기상청 발표가 아닌 우리가 느끼기에는 이보다도 더 많은 정도의 눈이 서울과 경기 지방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눈폭탄이었다. 앞으로 몇년간 웬만한 눈 가지고는 눈폭탄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문제는 바로 아침부터였다. 많은 양의 눈이 온다고는 했지, 설마 이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나보다. 공무원분들 아침까지 출근하실 시간이 되도록 모르셨던 것 같은데, 하기사 모든 사람이 설마 설마 했을 게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카오스의 세계. 출근 시간부터 수도권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평소 30분 거리를 4시간 만에 출근하는 기 현상에서부터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아찔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었다.

늘상 눈이 오면 시민들의 안전한 발이 되어 주었던 지하철... 그 엄청난 눈폭탄에 요녀석이 멈춰 버릴 줄이야.....


<대략.. 이정도의 눈 폭탄이 하늘에서부터 한방에 떨어졌다는 거다...>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간 순간, 나는 정말 엄청난 것을 목격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지하철 선로가 거의 눈에 뒤덮여 있다시피 한 것이었다.

눈 사이로 덩그러니 선로만 삐져 나와 있는 이 모습이란.... 순간 이 눈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지하철은 지연 운행이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정말로 지연 운행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사실 처음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기계라는 녀석도 얼어 버릴 수가 있기에 기계도 이 눈폭탄 속에서는 고장이 날 수 있다라는 것은 알지만 설마 전동차가 그럴 줄이야..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파묻혀 버릴 만큼 작은 체구도 아니고, 또 그렇게 약한 녀석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조금은 불만섞인 그 생각이 일순간에 이해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다음 사진을 보시라.


폰카로 땡겨 찍다 보니 사진이 좀 실망스러워 보일 수 있다. 뭐 DSLR이 아니니 그냥 이해들 해 주시길..

여튼, 저 차륜에 쌓인 눈을 보시라. 저 모습을 보니 그냥 한방에 아... 지하철이 맛이 갈 수 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한번에 들면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기 시작했다. 저 상태라면 브레이크라고 제대로 들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이 사진을 보시라. 이 부분은 전동차의 안정기, 전기장치 등 여러 장치들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놈이 눈으로 가득 차 있다. 웬만하면 엄청난 열이 나는 부품들 집합이라 저 눈이 다 녹았겠지 싶은데, 그게 아니다.

자동차도 눈이 쌓여서 정상적으로 냉각이 안 되면 위험한데..

게다가, 지난 12월 초에 해저 터널에서 멈춰버린 유럽의 유로스타도 동력계통에 어이없이 '눈'이 조금 들어갔다는 이유로 노선 전체가 며칠간 마비가 되지 않았던가..


<고속철도와 다양한 기후의 지역, 유럽에서 눈 때문에 고속열차가 멈췄단다.>

그런데 이젠, 지연 운행에 이어 더 난감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유럽에서도 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이젠 우리나라 지하철...
문이 얼어서 잘 열리거나 닫히지가 않는단다.

정말 산넘어 산이었다. 그나마 좀 달릴 수 있게 되나 싶었더니, 이젠 문 때문에 안그래도 제시간에 운행을 못 하는데 더 시간을 잡아 먹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냥 받아 들이기로 했다. 완전 천재 지변 수준의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문이 얼어 버렸다는 것 역시도 자연스레 이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최대한 제 시간에 운행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을 뚫고 나갈 수가 없다면, 이 엄청난 눈 폭탄을 조금이라도 즐겨 보면 되지 않겠는가. 100년인가 104년인가, 하여튼 한세기만에 내린 엄청난 눈이라는데...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나름 눈 구경(?) 도 하고, 전화통화도 했다가, 독서도 했다가, 게임도 했다가, 이것 저것 별 불평 없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하철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정말 듣기에도 거북할 만큼 육두문자가 섞인 욕과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

그렇게 욕을 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못 하는 열차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설마... 직접 열차를 모는 기관사나 선로 등을 정비하는 직원들이 귀찮아서 또는 일부러 열차를 지연 운행시켰겠는가...

뻔히 움직이지 않는 출입문을 고치기 위해 의자를 들어내고 문을 움직이는 기계 장치에 얼어붙은 눈을 녹이며 역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정신없이 불평을 쏟아내고, 문이 열렸는데도 이제서야 열어제낀다고 불평에, 문이 잘 닫히지 않으니 이번엔 문을 열고 닫아댄다고 불평을 쏟아내는 그 모습들...

분명히 보기 좋은 모습만은 아니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도 불편했던건 사실이었단 말이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렇다, 나도 불편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날도 춥고, 기다리기도 싫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거 다 안다. 그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조양히 있는 사람들이 불편한거, 힘든거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이번만큼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고 이해하는 모습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대신에 불편함에 대한 의사 표현은 확실히 해야겠다. 앞으로 적어도 문이 얼어붙지 않게끔은 열차에 조치를 해 달라고 말이다.

혹자는 '혹한기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잘못 아니냐' 라고도 말한다. 그렇다 잘못은 잘못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최대한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비를 했어야 옳다.

그런데, 그 좋다는 유럽의 고속철도마저도 또 혹한과 폭설에 멈춰 버렸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정말 그 대단하다는 나라들마저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그런 추위와 폭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대비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이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 했던 것 아닐까?


나도 안다, 다른 일에 신경쓰느라 이런 것들도 제대로 안 한거 아니겠냐는 질책들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또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기관사님들이나 선로 정비 보수, 열차의 정비를 담당하는 분들이 대충 대충 하자고 합의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솔직히 아니지 않을까..? 최소한으로라도 말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과 요구, 새로운 제안을 서슴지 않되, 무차별적인 욕설과 불평 불만은 좀 자제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모습들로 가득찬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추위와 폭설에 전동차 운행에 애를 쓴 기관사님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문을 열고 닫느라 열차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며 닫히지 않는 문을 닫느라 애쓴 직원분들, 그리고 당연히 불편해 하고 있을 승객들의 불만을 모두 받아내고 참아낸 직원분들, 열차를 정비하느라 고생한 정비사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닫히지 않는 문을 직접 손수 닫느라 수고하신 모든 이름없는 승객분들... 다 여러분들 덕분에 요 며칠 지하철이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 운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추위 다들 무사히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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